2026 · 11월 1일 추수감사주일
좋은 교회에서
위대한 교회로!
히브리서 12장 2절
설교 본문
2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2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읽을거리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교회를 떠올리면 십자가와 종탑이 있는 건물이 먼저 생각나지 않습니까. 그러나 교회가 예배당을 소유하고 사용할 수는 있어도 예배당 자체가 교회는 아닙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이며,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인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에게 교회는 어머니가 된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우리를 낳고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품과 같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상에서 불러내신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구약에서 교회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에다(עֵדָה)와 카할(קָהָל)이며 둘 다 이스라엘 회중을 뜻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의 민족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구약의 교회였고(행 7:38), 신약의 교회는 새 이스라엘입니다(갈 6:16).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은 에다를 쉬나고게(συναγωγή)로, 카할을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로 옮겼습니다. 쉬나고게는 대체로 유대인의 종교적 모임이나 그 장소를 가리켰지만, 신약에서 교회를 가리키는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말은 에클레시아입니다. 에클레시아는 본래 고대 그리스에서 정치와 공적인 일을 처리하려고 각자의 처소에서 부름을 받고 나온 자유 시민의 모임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불러 모으신 회중이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공동체입니다.
그리스의 시민들은 마을 대표로 모여 회의한 뒤 마을로 돌아가 그 내용을 전했습니다. 신약의 교회도 예배가 끝나면 흩어져 이웃을 사랑하고, 교회만이 가진 소중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교회는 모이는 교회이면서 흩어지는 교회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영어의 church는 ‘주께 속하였음’을 뜻하는 헬라어 퀴리아코스(κυριακός)에서 나왔습니다. 교회는 설립자나 목회자나 오래 다닌 성도의 소유가 아니라 주님의 소유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신 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교회입니다(마 16:18).
성경은 교회를 이런 모습으로 그립니다
그리스도의 몸. 교회가 그리스도와 유기적으로 연합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몸의 혈류가 막히거나 신경이 끊어지면 몸이 비정상이 되듯이, 교회도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지시를 받고 순종해야 건강하고 활력 있는 몸이 됩니다(골 1:18; 엡 4:16). 지체가 된 우리는 서로 돕고 존중하며 함께 자라 가야 합니다(고전 12:12–27).
성령의 전.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지상의 성소에 계셨지만, 신약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초점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우리는 성전다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고전 3:16; 6:19).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 나라. 교회는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전부는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는 수단이며,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는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를 보고 실체를 알듯이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와 은혜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교회는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에 잘 순종하는 성도가 많은 교회이며, 세상 속에서 시민으로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성도가 많은 교회입니다.
거룩한 신부. 교회의 생명은 거룩에 있습니다(레 11:45; 벧전 1:15–16).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성도를 영적으로 아내라고 부르신다고 말하는데, 성적인 의미가 아니라 독점적 사랑의 의미입니다. 신명기 4장 24절에서 하나님을 질투하시는 분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쩨쩨하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와 독점적인 사랑을 나누기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가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이 우상숭배이고, 이는 예배의 거룩이 깨진 것이어서 반드시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는 아홉 가지 우상
카일 아이들먼 목사의 『거짓 신들의 전쟁』은 현대인이 섬기는 우상으로 음식, 성(性), 오락, 성공, 돈, 성취, 로맨스, 가족, 그리고 ‘나’를 꼽습니다. 음식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나 과잉 성취처럼 평범한 것도 지나치면 우상이 됩니다. 가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우상이 되는데, 책은 아브라함이 백 세에 얻은 아들까지도 하나님 다음으로 사랑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내 생각이 우선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내가 영광받기를 원한다면 ‘나’를 숭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순결한 신부인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상을 하나씩 제거하는 삶을 살 때 성도와 교회는 하나님의 더 큰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참된 교회의 네 가지 속성
사도들이 세상을 떠나자 사도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무리가 생겼습니다.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교회가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참된 교회를 규정하는 속성을 정리했습니다. 속성은 교회가 가져야 할 본질적인 성격입니다.
통일성.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오직 하나이며, 교회의 하나 됨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옵니다(엡 4:1–16). 통일성은 다양성을 존중하며 하나 되는 것이고, 다양성을 무시하는 획일성과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도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요 17:11).
거룩성. 거룩의 기본 뜻은 구별입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공동체이며, 죄와 죄악된 세상의 문화와 시스템으로부터 구별되어 그리스도께 헌신한 공동체입니다(요 15:19; 벧전 1:15–16). 교회의 능력은 거룩에 있고, 거룩을 잃은 교회는 맛 잃은 소금처럼 버려져 세상에 밟히게 됩니다.
보편성.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회’에서 공회는 보편적 교회를 뜻하며, 개교회와 대비되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머리라고 믿는 모든 교회가 하나라는 뜻이고, 곧 형제교회라는 뜻입니다. 우리 교회만이 아니라 모든 교회가 함께 동역하여 우리 고장과 대한민국과 온 세계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가 속한 노회와 총회를 섬기는 일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사도성.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들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는 데서 시작됩니다(요 20:21; 엡 2:20). 사도의 교훈은 신약성경이고, 사도의 사역은 소수의 개인이 아니라 전체 교회가 계승합니다. 교회는 교회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사랑하고 섬기며 마침내 구원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마 28:19–20; 엡 1:10, 23).
참된 교회를 알아보는 세 가지 표지
교회의 표지는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분하는 기준입니다.
참된 복음의 바른 선포. 종교개혁 시대에 진짜와 가짜를 가른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복음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는지, 인간의 노력으로 얻는다고 가르치는지에 따라 구분됩니다. 루이스 벌코프는 말씀의 바른 선포를 가장 중요한 교회의 표지로 꼽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4절은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라고 정의하며, 우리는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롬 1:16).
성례전의 신실한 시행. 성례는 거룩한 예식이라는 뜻이며, 어거스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은혜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성례는 세례와 성찬입니다. 세례는 죄 사함을 통한 구원을, 성찬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표시합니다(고전 11:23–30). 성례는 말씀과 떨어질 수 없고, 말씀에 근거하여 시행되어야 합니다.
권징의 신실한 시행. 권징, 곧 징계는 형벌이 아니라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한 회초리입니다. 이를 통해 성도는 타락하지 않고 성화를 경험하며, 교회 공동체는 순결해집니다(마 18:15–17; 계 2:20, 24, 25).
부족해도 교회는 이 땅의 소망입니다
이런 속성을 가진 교회는 세상의 소망입니다.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교회는 이 땅의 소망입니다. 책은 이어령 박사가 『지성에서 영성으로』에 쓴 글을 소개합니다. 오랫동안 예수님을 거부하다 개인의 구주로 믿게 된 그는, ‘왜 교회에 가느냐’고 따지듯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배고프면 식당에 가고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이, 먹어도 마셔도 놀아도 배워도 답답한 영혼의 갈증이 있을 때 가는 곳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모든 식당이 맛있지 않고 모든 병원이 명의는 아니어도 식당과 병원을 끊지 않듯이, 부패한 교회가 있다고 교회에 가지 말라는 것은 의사가 오진했으니 앞으로 병이 나도 병원에 가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책의 저자는 완전한 교회는 없지만 교회는 영혼의 갈증을 해갈하는 샘이며 인생의 궁극적 문제에 답을 주는 곳이라고 덧붙입니다.
말씀을 보다
읽을거리의 내용을 한 장씩 그림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림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상황(Context)·도전(Challenge)·변화(Change)의 세 문장으로 나눕니다. 성경 지식을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말씀이 내 삶에 하신 말씀을 편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이번 주 읽을거리 3줄 요약
1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셔서 모으신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이며,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 하나님의 백성, 거룩한 신부로서 거룩하게 살아야 하고, 하나님보다 앞서는 우상이 없는지 늘 살펴야 합니다.
3참된 교회는 통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을 갖추고, 복음의 바른 선포와 성례전과 권징의 신실한 시행으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상황 Context
읽을거리와 말씀을 만나기 전, 나는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교회’라고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릅니까. 건물, 예배, 함께하는 사람들, 봉사 가운데 어느 쪽에 가까웠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힘들거나 서운했던 일을 한 가지만 떠올려 봅시다. 가족, 셀, 봉사 어디서든 괜찮습니다.
이렇게 말해 보세요“저는 그동안 교회를 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전 Challenge
그 생각에 오늘 말씀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히브리서 12장 2절은 믿음의 시작이요 완성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요즘 내 눈은 주로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읽을거리는 교회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내 마음에서 하나님보다 앞서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예를 들면 돈, 성공, 오락, 가족, 내 생각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말해 보세요“그런데 오늘 말씀은 라고 하셔서, 저는 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변화 Change
그래서 나는 어떻게 변화되었거나, 변화되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이번 한 주 동안 교회를 위해 실천할 작은 일을 한 가지만 정해 봅시다. 예를 들면 예배 후 처음 오신 분께 먼저 인사하기, 우리 셀과 교회를 위해 하루 한 번 기도하기 같은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교회가 되려면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나눈 뒤에는 서로와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렇게 말해 보세요“그래서 이번 주에는 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나눈 결단을 하나님 앞에 조용히 적어보시겠습니까
결단찬양
결단찬양 악보
2026 · 10월 25일 주일예배
하나님을 거부하는
마음을 묻다
시편 14편 1절–4절
설교 본문 및 요약
1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1어리석은 사람은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없다” 하는구나. 그들은 한결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바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2주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을 굽어보시면서,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다.
3너희 모두는 다른 길로 빗나가서 하나같이 썩었으니,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4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한 자냐? 그들이 밥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나 주를 부르지 않는구나.
시편 14편 1절–4절
설교 요약
이성은 판사보다 변호사에 가깝습니다
요즘 우리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먼저 검색하고, 물건 하나를 살 때도 후기를 찾아 읽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물건에 불편했다는 후기가 달려 있으면 ‘이 사람이 사용법을 잘 몰랐겠지’ 하고 넘길 이유부터 찾고, 만족한다는 후기를 만나면 ‘역시 괜찮은 물건이구나’ 하며 확신합니다. 충분히 따져 보았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이미 마음이 기운 쪽을 지키려고 이유를 찾은 것입니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인간의 이성이 진실을 공정하게 가려내는 판사보다 이미 내려진 결정을 변호하는 변호사에 가깝다고 설명합니다. 마음이 먼저 결정하고 지성이 뒤에서 뒷받침하는 일이 우리에게 적지 않습니다.
믿지 못한다는 말 뒤에 내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신앙의 문제에서도 같은 모습이 나타납니다.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해서 믿지 못하겠다”,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하는 분이 계십니다. 설교자는 오늘 말씀을 증거 중심으로 전할까 생각했지만, 그동안 복음을 전해 보니 설명을 듣고 증거를 살피면서도 이미 내린 결론을 지키려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면 살아온 방식이 바뀌어야 하기에 마음에 저항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분명히 전할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은 죄로 그분을 떠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런데 내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앞서면 이 소식을 듣고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게 되고, 이성은 하나님이 계신지 살피기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마련하는 데 쓰입니다. 스스로는 증거가 부족해서 믿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자기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을 여러 논리로 변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가지에서 떨어진 잎과 같습니다
시편 14편은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시 14:1)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어리석은 자’로 옮긴 히브리어 나발(נָבָל)은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의 뜻을 외면하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어리석음을 가리킵니다. 지식이 많고 논리가 정교해도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부인하며 살아간다면 성경은 그 삶을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가지에서 떨어진 잎은 한동안 푸른빛을 띠지만 수분을 공급받지 못해 끝내 바스러지고, 충전기를 뽑은 휴대전화는 화면이 켜져 있어도 앞서 공급받은 전력으로 버티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삶이 사실은 생명의 근원에서 끊어진 채 남은 힘으로 버티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수고하여 바라던 것을 얻고도 마음 한편이 헛헛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외로우며, 인정을 받을수록 그것을 잃을까 불안합니다. 원하던 것을 다 얻은 뒤에도 마음이 쉴 곳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영적 고갈의 신호입니다.
고집은 도움을 간섭으로 듣게 만듭니다
생명의 근원에서 끊어져 메말라 가면서도 하나님을 그토록 완강하게 거부하는 까닭은 지식이 부족해서만이 아닙니다. 시편 14편 4절은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고 묻습니다. 세상일에 어둡거나 계산에 서툰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이익에는 누구보다 밝으면서 하나님 앞에서는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면 자기 판단과 뜻을 굽혀야 하기에 끝까지 자기 생각을 붙듭니다. 설교자가 소개한 이야기에서, 기독교 상담가 댄 앨런더를 찾아온 한 남자는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누가 저를 분석하고 어떻게 살라고 말하는 걸 제일 싫어합니다”라고 말했고,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렀는데도 자기 생각을 바꿀 마음은 없었다고 합니다. 잠언은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잠 12:15)고 말합니다. 이런 고집은 어른이 되어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본성으로 타고납니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는 아이는 잡아 주려는 부모의 손을 뿌리치며 “손잡지 마! 나 혼자 갈 수 있어!”라고 소리치고, 하나님 말씀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몸이 자란 뒤에도 누구의 도움이나 간섭도 받지 않겠다는 마음을 그대로 품고 삽니다. 그러면 나를 보호하려는 도움마저 간섭으로 들리게 됩니다.
증거 앞에서도 고집은 눈을 가립니다
고집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증거를 마주할 때 더 드러납니다. 기독교 변증에는 우주와 생명의 정교한 질서에서 창조주를 생각하게 하는 목적론적 논증이 있습니다. 초정밀 부품이 담긴 상자가 폭풍에 흩어졌다가 저절로 맞물려 작동하는 최신 스마트폰이 되었다고 누군가 설명한다면 우리는 선뜻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세포 하나에도 복잡한 구조가 있고 광대한 우주가 일정한 법칙으로 움직이는 질서 앞에서는 ‘그래도 우연일 수 있지 않느냐’는 가능성만 붙듭니다.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말만으로 눈앞의 정교한 질서가 설명되는 것은 아니며, 우리는 일상에서도 여러 설명을 견주고 증거를 살펴 더 믿을 만한 쪽을 판단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1597년 명량에서 열세 척으로 백 척이 넘는 왜선을 물리친 일은 실험으로 재현하지 않고 『난중일기』와 『선조실록』 같은 사료를 살펴 받아들입니다. 설교자는 아내의 사랑도 화학 공식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사랑을 보여 주는 눈빛과 행동, 함께 살아온 시간이라는 구체적 증거로 확신한다고 말합니다. 완벽한 증명이 주어질 때까지 판단을 미루겠다는 태도도 아무 선택을 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쪽에 삶을 맡기는 일입니다.
의심하는 나의 이성과 기준도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를 지성이나 감정의 문제로 설명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성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거나, 세상의 고통을 보면 믿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의심할 수 없고, 무엇을 의심할 때에는 그 판단의 근거가 되는 다른 무엇을 이미 믿고 있습니다. 이성으로 납득되지 않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이성의 판단을 신뢰하고 있고, 세상의 고통을 보며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고 말하는 사람은 무엇이 옳은지에 관한 기준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심의 근거로 삼은 그 판단과 기준은 어디에서 왔고 얼마나 믿을 만한지도 물어야 합니다. 올더스 헉슬리는 『목적과 수단』(1937)에서 “나에게는 세상이 의미를 갖지 않기를 바랄 동기가 있었다”고 적었고, 자신에게 무의미의 철학이 기존의 도덕과 정치·경제 체제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해방의 도구였다고 밝혔습니다. 셸던 바너켄은 그리스도를 믿어도 되는지 확실한 근거를 구하다가 “내 뒤에도 틈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확실함이 없을 수 있었지만,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확실함도 없었습니다(A Severe Mercy). 믿는 쪽에 요구했던 확실함을 거부하는 쪽에도 똑같이 요구해 보라는 초대입니다.
고집의 정글에서 나와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십시오
1945년 전쟁이 끝난 뒤에도 필리핀 루방섬의 정글에 남아 있던 일본군 장교 오노다 히로오는 하늘에서 뿌려진 투항 권고 전단지와 가족의 편지를 보고도 ‘미군의 함정이다, 내 판단이 맞다’는 논리를 세워 29년 동안 ‘전쟁’을 이어 갔고, 1974년 옛 상관이 직접 찾아와 명령을 내린 뒤에야 무기를 내려놓았습니다. 내 인생은 내가 통제해야 안전하다는 고집을 붙들면 하나님의 부르심조차 나를 위협하는 말처럼 들리고, 나를 지키려고 세운 논리가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밀어내는 방어벽이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 없이 홀로 인생을 책임지려 하니 마음에 쉼이 없고,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삶의 무게에 지쳐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나를 지으시고 나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분의 품으로 돌아가 참된 자유와 안식을 누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굴복시켜 짓밟으려고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사랑으로 돌아오라고 부르십니다. 내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의심이 있다면 의심을 가지고, 상처가 있다면 상처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십시오.
말씀을 보다
주일 말씀을 한 장씩 이미지로 정리했습니다.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상황(Context)·도전(Challenge)·변화(Change)의 세 문장으로 나눕니다. 성경 지식을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말씀이 내 삶에 하신 말씀을 편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오늘 설교 3줄 요약
1증거가 부족해서 믿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내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먼저 결론을 내리고 이성이 그것을 변호할 때가 많습니다.
2그 고집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섭처럼 느끼게 하고, 생명의 근원에서 떨어진 삶을 메마르게 합니다.
3하나님은 굴복시키려고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살리시려고 부르십니다. 고집을 내려놓고 주님께 삶을 맡길 때 참된 안식을 누립니다.
상황 Context
오늘 말씀을 듣기 전, 나는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최근에 누군가에게 충고나 지적을 들어서 마음이 불편했던 일을 한 가지만 떠올려 봅시다. 가족, 직장, 교회 어디서든 괜찮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원하던 것을 얻었는데도 마음이 허전했던 때가 있었습니까. 일, 사람과의 관계, 인정받는 일 가운데 어디에서 그랬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이렇게 말해 보세요“저는 요즘 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도전 Challenge
그 상황에 오늘 말씀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오늘 설교에서 마음에 가장 남은 말씀이나 장면은 무엇입니까. 왜 마음에 남았는지도 이야기해 봅시다.
나는 아직 내려놓지 못한 고집이 있습니까. 예를 들면 자녀 문제, 진로, 돈, 용서하지 못한 사람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말해 보세요“그런데 오늘 말씀은 라고 하셔서, 저는 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변화 Change
그래서 나는 어떻게 변화되었거나, 변화되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이번 한 주 동안 내려놓아 볼 고집을 한 가지만 정해 봅시다. 그리고 그것을 주님께 맡기는 기도를 한 문장으로 말해 봅시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 이번 주에 할 수 있는 작은 일은 무엇입니까. 나눈 뒤에는 서로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렇게 말해 보세요“그래서 이번 주에는 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나눈 결단을 하나님 앞에 조용히 적어보시겠습니까
2026 · 10월 18일 주일예배
영적성장의 세 가지 길:
순종·양육·교제
베드로전서 1장 22절–2장 2절
설교 본문 및 요약
22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23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1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22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 영혼을 정결하게 하여서 꾸밈없이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23여러분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썩을 씨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 곧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24“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전해진 말씀입니다.
1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의와 모든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하는 말을 버리십시오.
2갓난 아기들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2절–2장 2절
설교 요약
오래 믿었어도 말씀 앞에서는 양육받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살아오며 쌓은 지식과 경험을 믿음의 삶에서도 그대로 의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미 어른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벧전 2:2)고 권합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멜빈은 사랑을 글로 쓰는 탁월한 작가였지만 곁에 있는 사람을 헤아리는 데에는 서툴렀고, 이웃의 개를 맡아 돌보고 식당 종업원 캐럴의 사정을 알아 가며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나이와 지위가 있어도 말씀 앞에서는 배우고 훈련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안에는 영적 어린아이의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팀 켈러는 “우리는 자신이 여전히 어리석고 미숙하며 양육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린아이는 변덕스럽고, 자기 중심적이며, 집중하는 시간이 짧고, 잘 속습니다. 우리도 형편이 풀리면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다가 어려워지면 의심하고, 내 사정을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하며, 빠른 응답을 찾아다니다 마음이 식고, 인상적인 말을 성경에 견주어 보지 않은 채 받아들입니다. 이런 모습을 지적받으면 고칠 것을 살피기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부터 설명하게 되는데, 자신을 변호하는 데 마음을 쏟으면 필요한 가르침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갓난아기’로 번역된 헬라어 아르티겐네타 브레페는 이제 막 탯줄을 자른 핏덩이를 뜻하며, 체면과 계급장을 떼어 내고 말씀 앞에 전적으로 매달리라는 요청입니다.
성장의 기준은 그리스도이고, 힘은 이미 받은 새 생명입니다
무작정 열심히 한다고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마이클 조던의 경기 영상을 초 단위로 쪼개어 보며 슛 각도와 보폭, 걸음걸이까지 따라 하고 자신의 자세를 고쳤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델은 예수님이며, 성경은 그 목표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엡 4:13)이라고 부릅니다. ‘온전한’으로 번역된 텔레이오스는 목적을 뜻하는 텔로스에서 나온 말로, 온전히 자라 성숙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존 스토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이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기』). 이기심과 교만이 남은 우리에게 이것이 가능한 까닭은, 베드로가 말하듯 우리가 “썩지 아니할 씨”,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미 거듭났기 때문입니다(벧전 1:23). 부모가 이미 사랑하는 자녀이기에 양보하고 사과하는 법을 가르치듯, 하나님도 새 생명을 먼저 주시고 그 생명에 합당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순종의 길: 내 뜻과 낙심을 넘어 따릅니다
“진리를 순종함으로”(벧전 1:22)는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데서 멈추지 않고 따라 사는 것입니다. 봉사를 알아주지 않아 서운할 때 감정대로 그만두지 않고, 주님께서 걸으신 섬김의 길을 기억하며 자리를 지키는 것이 순종입니다. 이 길에는 두 가지 걸림돌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 뜻대로 하고 싶은 욕망으로,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고 기도하며 본을 보이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순종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다 낙심하는 것으로, 잘못은 인정하고 회개하되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사 49:16)라는 약속과 아들을 내어주신 사랑을 의지해 다시 순종해야 합니다.
양육의 길: 말씀을 자르고 씹고 소화합니다
몸이 음식을 먹고 소화해야 자라듯, 믿음도 말씀을 곁에 두거나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 안에 받아들여야 자랍니다. 먼저 이 말씀이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 맥락을 살펴 이해하고, 그다음 말씀을 마음에 두고 하나님과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며 회개와 감사와 기도로 잇고, 마지막으로 오늘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순종할 일을 살펴 삶에 적용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골 3:16)라고 한 것은 성경을 읽는 시간만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일을 결정할 때에도 배운 말씀이 떠올라 나를 살피게 된다는 뜻입니다.
교제의 길: 공동체가 나의 사각지대를 비춥니다
설교자가 섬기던 부서의 가을 소풍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고를 때, 권사님들은 저마다 자기 얼굴이 잘 나온 사진부터 고르셨다고 합니다. 우리도 자기 입장에서 보느라 놓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조언했다고 생각해도 상대는 그 말에 상처를 받을 수 있고, 맡은 일을 열심히 했다고 여겨도 곁의 사람은 자기 이야기가 무시당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수고를 알아주면서도 고쳐야 할 점을 사랑으로 말해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야 하고, 우리도 그들의 성장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며 사는 동안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 자라 갑니다.
오늘부터 다시 배우십시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완성하고 ‘신적인 예술가’라 불린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까지 대리석을 깎았고, 작업실 스케치에서 “앙코라 임파로(Ancora Imparo), 나는 지금도 여전히 배우고 있다”라는 글귀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오래 믿었다는 이유로, 이만큼 알고 이만큼 섬겼다는 이유로 “이 정도면 됐다”며 돌아서는 순간 성장은 멈춥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피로 주신 새 생명은 내 기분과 내 상처와 내 유익에 머물라고 주신 생명이 아닙니다. 부족함이 드러났다고 자라기를 포기하지 말고, 미루어 온 순종을 시작하고, 귀를 닫았던 권면을 다시 들으며, 사랑해야 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십시오.
말씀을 보다
주일 말씀을 한 장씩 이미지로 정리했습니다.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상황(Context)·도전(Challenge)·변화(Change)의 세 문장으로 나눕니다. 성경 지식을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말씀이 내 삶에 하신 말씀을 편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오늘 설교 3줄 요약
1오래 믿었어도 우리 안에는 영적 어린아이의 모습이 남아 있어서, 말씀 앞에서는 여전히 배우고 자라야 합니다.
2자라는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자랄 힘은 이미 받은 새 생명입니다.
3순종(내 뜻과 낙심을 넘어 따르기), 양육(말씀을 자르고 씹고 소화하기), 교제(서로의 사각지대를 비추어 주기)의 세 길로 자랍니다.
상황 Context
오늘 말씀을 듣기 전, 나는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요즘 마음에 걸리거나 힘들었던 일을 한 가지만 떠올려 봅시다. 신앙생활이든 일상이든 괜찮습니다. 예를 들면 봉사를 알아주지 않아 서운했던 일, 말씀이 잘 들어오지 않던 때, 누군가의 지적에 마음이 상했던 일입니다.
설교에서 말씀하신 영적 어린아이의 모습은 변덕스러움, 자기 중심, 짧은 집중력, 쉽게 속음입니다. 이 가운데 요즘 나와 가장 닮은 것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말해 보세요“저는 요즘 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도전 Challenge
그 상황에 오늘 말씀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오늘 설교에서 마음에 가장 남은 말씀이나 한 문장은 무엇입니까. 왜 마음에 남았는지도 이야기해 봅시다.
순종, 양육, 교제 가운데 요즘 내게 가장 부족한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이렇게 말해 보세요“그런데 오늘 말씀은 라고 하셔서, 저는 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변화 Change
그래서 나는 어떻게 변화되었거나, 변화되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이번 한 주 동안 실천할 작은 일을 한 가지만 정해 봅시다. 예를 들면 서운한 마음이 들어도 맡은 자리를 지키기, 하루에 말씀 한 구절을 읽고 오늘 내가 할 일 하나 정하기, 먼저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에게 연락하기입니다.
나를 사랑으로 바로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분께 어떤 도움을 청하겠습니까. 나눈 뒤에는 서로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렇게 말해 보세요“그래서 이번 주에는 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나눈 결단을 하나님 앞에 조용히 적어보시겠습니까
2026 · 10월 11일 주일예배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무엇인가?
베드로전서 2장 1–2절
설교 본문 및 요약
1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1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악의와 모든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하는 말을 버리십시오.
2갓난 아기들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
설교 요약
오래 믿었으니 다 알아야 한다는 착각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그 어려움이 자신에 대한 평가처럼 느껴진다”(캐럴 드웩, 『마인드셋』).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믿었으니 말씀도 잘 알고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는 말씀과 흔들리는 마음을 감춘 채 혼자 품게 됩니다. 그러나 오래 믿은 우리에게도 고쳐 갈 모습이 있으며, 이를 인정할 때 부족한 모습 그대로 말씀 앞에 나아가 자라기를 구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면허증이고, 성화는 빗길 운전입니다
베드로는 이미 믿는 이들에게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벧전 2:2)고 권합니다. 면허증을 받았다고 곧바로 노련하게 운전할 수 없듯이, 세례를 받았다고 성장이 끝나지 않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먹고 주님의 뜻을 배우며 따라가는 것이 성화입니다.
믿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두 마음이 충돌합니다
새 생명을 따라 살려는 마음과 남아 있는 죄의 습관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입니다(갈 5:17). 바울이 고발하는 ‘육체’의 뿌리는 하나님 없이 자기 힘으로 살려는 독립적인 자아의 고집이며, 방종뿐 아니라 도덕과 종교에 기대는 삶에서도 드러납니다. 휴대전화를 거두자 소리 지르는 아이처럼, 성령께서 붙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게 하실 때 숨어 있던 고집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싸움은 혼자 감당할 수 없기에 말씀과 교회 공동체의 양육이 필요합니다.
영적 성장의 세 단계, 유아기에서 아비와 어미까지
요한일서 2장은 성장을 세 단계로 보여 줍니다. 유아기는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요일 2:12)를 믿고 자신의 자격을 증명하려는 율법주의에서 벗어나는 때입니다. 청소년기는 감정이 메말라도 기록된 약속을 붙들고 순종하는 때로, 보르도의 포도나무는 물이 끊긴 가뭄에 암반을 뚫고 깊이 뿌리를 내립니다. 아비와 어미의 때에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받은 돌봄으로 다른 영혼을 돌보게 됩니다.
더 깊이 엎드리는 자로 자라가십시오
존 뉴턴은 성숙한 그리스도인도 처음 믿었을 때처럼 자기 힘으로 유혹을 이길 수 없으며, 연약함을 더 분명히 알기에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주님께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성숙은 독립이 아니라 더 깊은 의존입니다. “저는 아직 잘 모릅니다.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고백하며, 아버지를 어린아이처럼 온전히 의지하시면서도 가장 지혜로우셨던 예수님을 닮아 가십시오.
말씀을 보다
주일 말씀을 한 장씩 이미지로 정리했습니다.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상황(Context)·도전(Challenge)·변화(Change)의 흐름으로 나눕니다.
상황 Context
말씀을 듣기 전, 나는 어떤 자리에 있었습니까.
“오래 믿었으니 다 알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나 흔들리는 마음을 혼자 품고 있었던 적이 있습니까. 어떤 때였습니까.
실수 하나나 지적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지거나 날카로워졌던 최근의 경험이 있습니까. 그때 나는 무엇을 지키려 했습니까.
도전 Challenge
그 상황에 말씀은 무엇을 도전하셨습니까.
설교는 ‘육체’의 뿌리를 하나님 없이 자기 힘으로 살려는 독립적인 자아의 고집이라고 말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려 할 때 내 안에서 거세게 저항하는 고집은 무엇이었습니까.
요한일서 2장의 세 단계 가운데 지금 나는 어디에 가깝습니까. 자격을 증명하려는 마음(유아기), 감정이 메마르면 순종을 멈추는 마음(청소년기), 받은 돌봄을 나누지 못하는 마음(아비와 어미) 중 어느 쪽이 가장 마음에 걸립니까.
변화 Change
그 도전으로 나는 어떻게 변화되었거나, 변화되려 애쓰고 있습니까.
이번 주 “저는 아직 배워야 합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자리는 어디입니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면 좋겠습니까.
마음이 메마른 날에도 붙들 약속의 말씀 한 구절과, 오늘 해야 할 순종 한 가지를 정해 서로를 위해 기도해 봅시다.
오늘 나눈 결단을 하나님 앞에 조용히 적어보시겠습니까
2026 · 10월 4일 주일예배
나답게 살라는데,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시편 8편 1–5절
설교 본문 및 요약
1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복자를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1주 우리 하나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저 하늘 높이까지 주님의 위엄 가득합니다.
2어린이와 젖먹이들까지도 그 입술로 주님의 위엄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는 원수와 복수하는 무리를 꺾으시고, 주님께 맞서는 자들을 막아 낼 튼튼한 요새를 세우셨습니다.
3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
4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5주님께서는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그에게 존귀하고 영화로운 왕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시편 8편 1–5절
설교 요약
“나답게 살라”는 말이 오히려 나를 잃게 합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쉽게 머뭇거립니다. 이름과 직업은 말해도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지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나를 찾으라고 재촉합니다. 체중을 줄이고 돈을 벌고 친구를 바꾸면 자존감이 오른다고 끊임없이 권하지만, 왜 몸무게와 소득이 내 가치를 정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그 기준을 따라 자신을 바꾸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그 가혹한 잣대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성취·감정·자율성 — 세상이 내미는 세 가지 저울
정체성을 찾는 길은 크게 세 갈래입니다. 성취의 길은 돈과 사랑처럼 바깥의 것에 자신을 맞추다 끝내 자신을 잃습니다. 팀 켈러는 “영혼을 팔며 살다 보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게 된다”고, 헤르만 헤세는 “작가가 되었지만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고 했습니다. 감정의 길은 가장 깊은 욕구를 따라 살면 참된 나를 찾는다 하지만, 갈라디아서 5장 17절처럼 육체와 성령이 서로 대적하니 하나로 정리되는 욕구는 없습니다. 자율성의 길은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정한다”지만, 객관적 기준 없는 자율은 결국 다른 사람의 자율과 충돌할 뿐입니다.
창조주의 영광이 사람의 존귀를 드러냅니다
성경은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가 아니라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가에서 정체성을 풀어 갑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시 8:1) 찬양하다가,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 8:5) 고백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엘로힘)’은 70인역과 히브리서 2장에서 ‘천사’로 번역될 만큼, 사람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독보적임을 보여 줍니다. 존 칼빈은 이를 두고 “우리가 존귀한 이유는 우리 안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저 베푸신 은혜의 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티끌 위에 씌워진 은혜의 관
낡은 캔버스라도 피카소의 서명이 있으면 가치가 달라지듯, 우리의 가치도 지식과 외모라는 ‘상태’가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라는 ‘기원’이 결정합니다. 시편 기자는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자카르) 돌보시나이까(파카드)”(시 8:4)라고 묻습니다. 자카르는 온 우주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는 뜻이고, 파카드는 서툰 일상의 형편까지 살피신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저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 앞에 서십시오
C. S. 루이스는 “참된 영광이란 하나님께 얻는 인정이며, 우리가 세상에서 그토록 갈망하는 모든 인정과 사랑은 그 온전한 인정의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썼습니다. 세상은 날마다 우리를 저울 위에 올려 통장 잔고와 외모로 값을 매기지만,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시선은 다릅니다. 독생자의 생명을 값으로 치르시면서까지 우리에게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우신 그 사랑 앞에서, 오늘도 세상의 저울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이미 인정하신 존재로 살아가는 한 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보다
주일 말씀을 한 장씩 이미지로 정리했습니다.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상황(Context)·도전(Challenge)·변화(Change)의 흐름으로 나눕니다.
상황 Context
말씀을 듣기 전, 나는 어떤 자리에 있었습니까.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보통 무엇으로 나를 설명해 왔습니까. 직업이나 성과, 관계, 감정 중 어느 것에 가장 먼저 기대어 왔습니까.
체중, 소득, 인정, 자유로운 선택 — 세상이 내미는 저울 중에서 최근 나를 가장 힘들게 흔들었던 저울은 무엇이었습니까.
도전 Challenge
그 상황에 말씀은 무엇을 도전하셨습니까.
설교는 성취·감정·자율성이라는 세 가지 길이 모두 ‘끝없는 쳇바퀴’, ‘내면의 모순’, ‘타인과의 충돌’이라는 치명적 결함을 가진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가장 의지해 온 길에서 이 결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언제였습니까.
“우리의 가치는 상태가 아니라 서명이 결정한다”는 말씀처럼, 내 가치를 내 ‘상태’(성과·외모·감정)가 아니라 나를 지으신 분의 ‘서명’으로 다시 보게 된다면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변화 Change
그 도전으로 나는 어떻게 변화되었거나, 변화되려 애쓰고 있습니까.
이번 주, 세상의 저울에 나를 올려놓고 비교하거나 평가하던 습관 중에서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와 내려놓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서로를 위해 기도로 함께 세워 줄 부분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오늘 나눈 결단을 하나님 앞에 조용히 적어보시겠습니까
2026 · 9월 27일 주일예배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삶도 바뀌지 않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3–16절
설교 본문 및 요약
13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3그러므로 여러분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신을 차려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이 받을 은혜를 끝까지 바라고 있으십시오.
14순종하는 자녀로서 여러분은 전에 모르고 좇았던 욕망을 따라 살지 말고,
15여러분을 불러주신 그 거룩하신 분을 따라 모든 행실을 거룩하게 하십시오.
16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3–16절
설교 요약
내 삶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현대인은 누구나 자기 삶의 운전대만큼은 스스로 쥐고 싶어 합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이고, 내 시간과 선택은 내가 결정한다”는 생각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원과 평안은 얻고 싶어 하면서도, 삶의 방향을 정하는 ‘선장 자리’만큼은 여전히 내가 쥐고 있기를 바랍니다.
거룩은 도덕이 아니라 소속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다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 삶이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거룩’이라 부릅니다. 거룩은 흠 없는 도덕적 품성이 아니라, 세상에 속해 있던 내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수술실의 메스가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 구별되어 쓰이듯, 거룩한 삶도 내 편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구별된 삶입니다. 1956년 에콰도르 정글에서 순교한 짐 엘리엇과 동료 선교사들의 이야기는, 거룩이 원하는 결과를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태도임을 보여 줍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
베드로는 이 거룩한 삶을 명하기 전에 먼저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고 말합니다(벧전 1:13). 흩어진 생각을 그대로 두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가다듬으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생각을 멈추는 일이 아닙니다. 성찰 없는 헌신은 광신이 되고, 진리에 순종함으로 영혼이 깨끗해진다고 베드로는 말합니다(벧전 1:22-23). 캄캄한 밤길에서 내비게이션을 믿으면서도 눈앞의 어둠에 자꾸 마음을 빼앗겼던 경험처럼,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 진리보다 눈앞의 감정과 상황에 더 쉽게 마음을 내어줍니다. 그래서 마틴 로이드 존스는 낙심이 찾아올 때 자기 감정의 소리를 듣고만 있지 말고 스스로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라고 권합니다.
생각의 틀 자체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의 허리를 동이는 일은 불안을 다스리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4장은 옛 사람을 벗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합니다(엡 4:22-24). 우리가 옳다고 여겨 온 판단 기준 자체가 말씀 앞에서 새로워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팀 켈러가 전한 대로, 우리는 자신이 자라 온 문화와 경험을 성경의 뜻이라 착각하기 쉽습니다. 위로는 받고 싶지만 판단의 기준만은 내어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 필립 리프가 말한 ‘구원이 아니라 치유만을 원하는’ 현대 신앙의 모습이 바로 우리 안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내려놓음이 곧 회복입니다
C. S. 루이스는 《천국과 지옥의 이혼》에서, 어깨 위 붉은 도마뱀을 차마 죽이지 못하던 한 유령이 마침내 그것을 내어드리자 도마뱀이 황금빛 준마로 변하고 유령 자신도 빛나는 사람이 되어 그 말을 타고 달려가는 장면을 그립니다. 오래 붙들어 온 생각과 욕망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과 의지를 바른 방향으로 사용하는 온전한 내가 됩니다. 오늘도 흩어진 마음의 허리를 말씀으로 동이고, 내 생각보다 크신 하나님의 진리 앞에 삶 전체를 내어드리는 한 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보다
주일 말씀을 한 장씩 이미지로 정리했습니다.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상황(Context)·도전(Challenge)·변화(Change)의 흐름으로 나눕니다.
상황 Context
말씀을 듣기 전, 나는 어떤 자리에 있었습니까.
“내 인생은 내 것이고, 내 시간과 선택은 내가 결정한다”는 생각이 최근 가장 강하게 올라왔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삶의 어떤 영역에서 유독 운전대를 남에게, 심지어 하나님께도 내어드리기 어려웠습니까.
그동안 ‘거룩’이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무엇이 떠올랐습니까. 도덕적으로 흠 없이 사는 모습이었습니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습니까.
도전 Challenge
그 상황에 말씀은 무엇을 도전하셨습니까.
설교는 ‘거룩(카도쉬)’을 도덕적 결백이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이 정의가 내가 가지고 있던 거룩에 대한 생각과 어떻게 달랐습니까.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는 말씀처럼,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 왔지만 이번 말씀 앞에서 다시 세워 봐야 할 나의 생각이나 판단 기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변화 Change
그 도전으로 나는 어떻게 변화되었거나, 변화되려 애쓰고 있습니까.
이번 주, 내 삶의 ‘선장 자리’를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내어드려야 할 영역은 어디입니까. 어떻게 내어드리려 합니까.
서로를 위해 기도로 함께 세워 줄 부분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오늘 나눈 결단을 하나님 앞에 조용히 적어보시겠습니까
교회소식
추수감사주일 & 설립기념주일: 38주년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예배로 드립니다.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를 고백합니다.
전도: 주님의 지상명령(대위임령, 마 28:18–20)
‧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셀별 참여).
하루시작 3분묵상 · 가족축복기도문
매주, 하루시작 3분묵상과 가족축복기도문이 제공됩니다.
가족축복기도문 ‘모바일용’으로도 제공됩니다(큐알코드).
기타 안내
우리교회 방문/등록하신 분들은 예배 후 ‘목양실’에서 뵙습니다.
셀모임 적극참여: 소그룹이 살아야 교회가 섭니다(교재활용).
2027 달력배부: 교회 달력을 가져가시기 바랍니다(1층나눔터).
이웃섬김 미용봉사: 11/05(목), 오전 10시
원로장로 추대 및 권사임직(은퇴): 11월 21일(토), 오후 2시
주요행사: 각기관총회/셀리더총회/교사총회/수료식 등
월별 주요행사
11/08 생일축하
11/21 원로장로추대/권사임직(은퇴)
11/22 월례회/예산당회/성탄트리장식
11/29 예결산위
교회안내
일원중앙교회는 강남구 일원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복음의 공동체를 꿈꾸며, 겸손과 소망, 사랑과 용기를 품고 나아가고자 하는 건강한 교회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충만한 아름다운 공동체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동서울노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 교회명
- 대한예수교장로회 일원중앙교회
- 담임목사
- 최대근
- 위치
- 서울시 강남구 양재대로53길 18(일원동)
- 문의
- 02)3412-1004 / Fax 02)3411-5479
예배 시간
- 장년예배
- 주일 오전 11시
- 유초등부
- 주일 오전 9시
- 중고등부
- 주일 오전 9시
- 1·2청년부
- 주일 오후 2시
- 수요예배
- 수요 저녁 7시 30분
- 금요기도회
- 금요 저녁 8시
섬기는 사람들
- 담임목사
- 최대근
- 원로목사
- 이광우
- 교육목사
- 이철기 · 최다윗
- 찬양간사
- 허은율
- 시무장로
- 이경근 · 이기정 · 장춘식
- 원로장로
- 오병두
- 은퇴장로
- 안승화 · 이효진
국내·해외 선교
- 국내
- 양주 링크처치(김정)
강릉 주의숲교회(김명석) - 해외
- 마다가스카르(이재헌)
필리핀 시나뽁교회(멜빈 레몰리노)
필리핀 장로회중앙선교 신학대학(마리아 헤수사 김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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